고교 교육의 질적 변화 시급하다
정부가 ‘쉬운 수능’ 기조를 일관적으로 유지하면서 향후 학생부전형은 더욱 확대되어 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미 예고된 것처럼 2017학년도에는 수능 한국사가, 2018학년도에는 수능 영어가 절대평가 등급제로 실시된다.
더욱이 2015 개정교육과정에 따른 새로운 수능체제에서 절대평가가 다른 영역으로 더욱 확산될 전망이며, 변별력이 낮아질 경우 학교 교육의 탈수능화가 가속화되면서 고등학교 교육과 대입에서 학생부 기록은 거의 절대적인 영향력을 갖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대입전형에서 학생부의 중요성은 갈수록 증가하고 있는 반면, 학생부 기록은 기재 내용에 금지와 제한이 많아 점점 획일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어 우려를 낳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교육개발원은 2015년 11월 발표한 ‘대입전형의 안정적 발전방안 연구’ 보고서를 통해 “학생부 기록의 금지와 제한 때문에 학생 개인보다 학교의 영향력이 증가해 고교등급제 논란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 예로 ‘교내 대회’에 대한 기재의 경우, 교육부는 ‘학생부 기재요령 지침’을 통해 금지 사항이나 잘못된 기재 예시를 제시하는 등 부정적 방식으로 지침을 주고 있다고 밝혔다.
<학교생활기록부 기재요령에 따른 교육부 세부 수정 사항> (49쪽) 교내 꿈 UCC 만들기 대회에 참가하여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연출과 촬영을 주도하여 작품을 발표하는 과정에서 영화감독에 대한 꿈을 갖게 됨. |
또한 교사 개인의 관심과 역량에 따라 학생 평가의 유불리가 발생하여 학생부 전형의 공정성을 훼손할 수 있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교사가 전체 학생에 대해 동일한 관심을 갖고 학생부를 기록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며, 같은 활동에서 동일한 성취를 이룬 학생들이라도 담당 교사의 역량에 따라 학생부에 기재되는 내용에는 큰 차이가 날 수 있다는 것이다.
학생 개인에 대한 평가 정보가 많지 않은 것도 문제다. 학생 개인의 소질과 역량이 어떠한지, 수행 과정과 성취 수준이 어떠한지를 보여주는 정보가 부족하며, 특히 교과 성적이 낮은 학생에 대한 관심과 기록은 거의 찾을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학력저하에 대한 세간의 우려를 잠재울 수 있는 학교의 교육 프로그램이 마땅히 없는 것도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특히 수업 방법이 질적으로 대폭 개선되지 않은 상태에서 학생부 전형을 확대한다면 학생들의 학력 저하와 함께 학생부 전형의 신뢰도가 급락할 것이며, 이는 학생 선발의 공정성에 대한 문제 제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로 인해 학생부 전형의 기반이 붕괴되거나 소수 학생을 선발하는 전형으로 축소되고, 대학입시는 수능과 논술의 변별력 강화로 회귀할 우려가 있다고 보고서는 내다보고 있다.
결국 고교교육의 질적 변화 없이 학생부 전형이 확대된다면 고교교육과 대학입시에 혼란이 발생할 뿐만 아니라 학교교육을 통한 창의적 인재 육성이라는 목표가 상실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문제는 어느 한쪽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교육을 담당하는 모든 주체들이 각각의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정부는 학생부 기재요령에 지나치게 많은 제한 규정을 두고 있고, 학생부에 오르는 학생의 성장 모습에 대한 관찰·기록이 매우 부족하며, 학생부 기재 내용에 대한 정부와 대학 간의 소통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 등에서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고등학교는 교사마다 학생부 기재요령에 대한 이해와 대응에 차이가 있으며, 수시로 관찰하여 학생부에 누가 기록하지 않고 학기말에 몰아서 일괄 기록하고 있는 관행이 지적된다. 또한 대학은 학생부 평가 기준과 항목에 대해 공개하는 것을 꺼리는 소극적 태도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
한편, 학생부 운용에 있어 가장 큰 문제는 학생부 기재요령과 실제 학생부에는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학생부 기재요령을 보면 “학생이 변화되어 가는 모습이 전체적으로 잘 드러나도록 충실히 기록”하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객관적 사실에 근거하여 핵심 내용만 간략히 기재하다 보니 “학생의 개별적 특성이 드러나지 않는 단순한 활동 나열식 입력”으로 기록되고 있다.
또한 창의적 체험활동상황의 특기사항은 “활동실적, 진보의 정도, 행동의 변화, 특기사항 등 활동한 결과에 대한 내용을 종합하여 학생의 개별적 특성이 드러나도록 입력하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실제는 기재요령대로 기록되지 않고 있다.
자율활동의 특기사항은 “활동결과에 대한 평가보다는 활동과정에서 드러나는 개별적인 행동 특성, 참여도, 협력도, 활동실적 등을 평가하고 상담기록 등의 관련 자료를 참고하여 구체적으로 입력”하고, 동아리활동 영역은 “자기 평가, 학생상호 평가, 교사 관찰, 포트폴리오 등의 방법으로 평가하여 참여도, 협력도, 열성도, 특별한 활동실적 등을 구체적으로 입력”하도록 요구하고 있지만 일선 학교에서는 이것 역시 기재요령대로 기록되지 않고 있다.
진로활동 영역의 특기사항 란에는 “여러 사항을 구체적으로 입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입력해야 할 사항으로는 특기·진로희망과 관련된 학생의 자질, 학생이 수행한 노력과 활동, 학생의 특기·진로를 돕기 위해 학교와 학생이 수행한 활동과 결과, 학생·학부모와 진로상담을 한 결과, 학생의 활동 참여도, 활동 의욕, 태도의 변화 등 진로활동과 관련된 사항, 학급담임교사, 상담교사, 교과담당교사, 진로진학상담교사의 상담 및 권고 내용 등이 있지만, 실제로는 이 역시 기재요령대로 기록되지 않고 있다.
또한 학교생활기록부에는 “학교에서 실시한 각종 교육활동의 이수상황 등 활동내용에 따른 개별적 특성이 드러나는 사항을 기재”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창의적체험활동 특기사항과 교과세부능력특기사항에는 교육활동 이수 상황이나 교사의 수업 내용이 기록되고 있다.
이에 따라 학생의 ‘개별적 특성’은 창의적체험활동란에 거의 기록되지 않고 있으며, 교과세부능력특기사항은 ‘이해’, ‘노력’, ‘수강,’ ‘우수’, ‘탁월’ 등 구체적이지 못한 표현으로 기록되고 있는 실정이다.
학생부와 학생부 전형에 대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학생부를 학교 교육에 대한 기록에서 학생 성장의 기록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학생 개인이 경험한 배움의 동기, 과정, 결과를 학생부에 세세히 기록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학생 맞춤형 교육과 함께 학생 개인 별 자료도 꾸준히 축적돼야 한다.
중장기적으로 보면 학생부를 교사만 기록하도록 할 것이 아니라 학생과 교사가 더불어 만들어가도록 전환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또한 지금처럼 교과 항목과 비교과 항목이 각각 분리돼 있는 방식을 지양하고, 교과를 중심으로 각 항목이 융합되는 방식으로 전환해 학교 교육의 질적 향상을 꾀해야 한다.
<교과와 비교과가 연계된 학생부 체제>
▲ 자료 제공=한국교육개발원 |
보고서는 현행 학생부의 10개 항목 중 수정 보완이 필요하지 않은 인적사항 / 학적사항 / 출결사항 / 자격증 및 인증 취득상황은 제외하고, 수상경력 / 진로희망사항 / 창의적체험활동상황 / 교과학습발달상황 중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 독서활동상황 /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에 초점을 맞춘 세부적 개선방안을 제안했다.
이에 본지는 학생부와 학생부 전형의 개선을 위해 한국교육개발원이 발표한 단기, 중기, 중장기 방안별 구체적 개선방안을 연재할 예정이다.
[출저] http://www.eduj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