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역량 종합적으로 평가
성적 중심 줄세우기 교육 완화
학생부종합전형(학종전형)으로 올해 서울대 동아시아 학부에 입학한 최예린(19)양은 고교 1학년 때 일본어와 일본문화를 학습하는 ‘일일일’(일본드라마로 공부하는 일본어ㆍ일본문화)이라는 동아리를 만들었다.
최양은 고교 3년간 ▦동아리 3개(일본어 동아리ㆍ영자신문반ㆍ멘토링)에 참여했고 ▦독서카페 ▦소논문 쓰기 대회 등 학교에서 마련한 프로그램을 충실히 따랐다. 최양은 “이런 활동들이 대학입학의 밑거름이 됐다”며“진로와 별다른 연관이 없어 보이는 동아리 활동도 본인이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입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후배들에게 조언했다. 최양의 경우 영자신문반에서 일본 관련 기사를 작성했고, 일본을 주제로 소논문을 작성하고 독서활동을 했다. 이런 경험들을 자기소개서에 썼고 면접 때도 동아리 활동을 적극적으로 어필했다. 그는 “평소 관심이 많던 분야를 주제로 동아리활동을 한 덕분에 다른 수험생들에 비해 스트레스를 덜 받으며 입시를 준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학교현장 “학종, 공교육 정상화 기여해”
학종전형(학교생활기록부를 바탕으로 자기소개서, 면접 등을 통해 학생 역량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전형)의 비중이 해마다 높아지고 있다. 서울대는 수시모집 전체 정원을 학종전형으로 뽑고, 연세대ㆍ고려대ㆍ서강대 등은 2018학년도부터 학생부교과, 논술, 특기자 전형을 폐지하는 대신 학종전형 선발인원을 늘리기로 했다. 2015학년도 전체의 55.0%였던 학생부 대입전형(학생부종합ㆍ학생부교과) 신입생은 2016학년도 57.4%, 2017학년도 60.3%로 매년 증가세다. 학교생활기록부에 채울 스펙을 갖추는 일이 만만치 않아 일각에서는“사교육을 조장한다”는 비판도 있지만, 학교 현장에서는 학종전형이 사교육 의존을 줄이고 공교육 정상화에 기여하는 등 긍정적인 효과가 크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올해 국민대 언론정보학부에 입학한 홍정민(19)양 역시 사교육 없이 입시에 성공한 경우다. 일찌감치 장래희망을 아나운서로 정한 홍양은 이에 맞춰 교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등 전략적으로 학종전형을 준비했다. 방송부 동아리에서 교내 행사와 축제를 전담해 진행했고, 이를 자기소개서에 기록했다. 학기당 10권 이상의 책을 읽은 후 독후감을 쓰는 등 틈틈이 생활기록부에 들어갈 내용도 준비했다. 그는 “학종전형을 준비하는 일부 학생들은 ‘동아리 스펙’을 쌓느라 오히려 더 바빠졌다고 하지만, 내 경우는 학교 방침에 따라 딱 한 곳의 동아리에서만 활동하고 대학에 입학했다”며 “몇 개의 동아리에 참여하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동아리를 잘 활용하는지가 입학을 좌우한다”고 말했다.
학종, 진로탐색 길라잡이 되기도
학종전형이 진로를 정하는 길라잡이가 되기도 한다. 올해 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에 입학한 나현진(19)양은 “명확한 장래희망을 정하지 못한 상태로 고등학생이 됐는데, 마침 모교가 수시전형으로 대학을 많이 보내는 편이라 자연스럽게 동아리활동에 참여하게 됐다”며 “중학생 때 몸 담았던 방송반이 떠올라 막연하게 영화동아리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나양은 동아리활동을 하면서 매주 수요일 방과후 1시간이 넘게 영화 사전제작 논의를 했고, 2주 동안 촬영을 하기도 했다. 영화 동아리에 흥미를 붙인 나양은 미디어 관련 활동도 확대해 테드(TEDㆍ인터넷 미디어를 기반으로 기술 오락 디자인 관련 강의를 중계하는 강연회)시청 동아리와 UCC제작반 활동도 했다. 나양은 스스로 미디어 관련 소논문을 작성해 제출했고 나중에는 이를 책으로 묶었다. 이런 활동을 하면서 그는 영화 제작과 배급에 관심이 생겼고, 자연스럽게 지망학과를 정하게 됐다. 다른 전형으로 입학한 같은 과 친구들과 비교하면 “학종전형의 위력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나양의 생각. 그는 “같은 과 친구들에 비해 내 내신등급이 0.7등급 정도 낮은데, 학종전형이 아니었다면 합격을 장담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적따른 줄세우기 선발 문제점 해법되나
학종전형은 수능과 내신등급 순으로 입학생을 선발하는 ‘줄 세우기’식 교육의 문제를 어느 정도 완화시키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2일 입시전문기관인 종로학원하늘교육이 2015학년도 서울대 합격자 배출 고교 837곳을 분석한 결과 이 중 327개 학교가 정시기준 입학가능 추정치보다 더 많은 학생을 서울대에 진학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광주수피아여고의 경우 201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점수 등을 토대로 정시합격 가능인원을 추정해보면 1명이 합격할 수 있었지만, 실제로는 학종전형(7명)과 정시(1명)를 합쳐 8명이 서울대에 진학했다. 부산 동아고 역시 정시로는 서울대 입학 가능학생이 없었지만 수시로만 4명이 서울대에 합격했다. 광주수피아여고 관계자는 “독서모임, 발표수업, 40여개의 동아리활동을 활발히 운영하고 이를 생활기록부에 기재하기 시작하면서 서울대 입학생이 확연히 늘었다”며 “대입결과만 좋아진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등 학종전형이 학교 교육 정상화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학종전형의 전신인 입학사정관제가 도입(2009년)되기 전에는 서울대 진학생이 거의 없다가 이후 서울대 입학생을 배출하기 시작한 학교도 100개가 넘는다. 인천 인제고의 경우 ▦2010년 0명 ▦2011년 2명 ▦2014년 3명 ▦2015년 4명으로 해마다 서울대 합격생 수가 늘어나고 있다. 2010년을 기준으로 서울대 수시 입학생이 한 명도 없었던 고교 중 125개 학교가 학종전형을 통해 2015학년도에 1~9명의 합격생을 배출했다.‘학종’의 효과가 명백하다는 것이 입시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재학생들 역시 예전에 비해 교내 활동에 집중하고 있다. 경기 수원의 한 일반고에 재학 중인 유정희(17)양은 “학종전형을 통해 대학에 입학한 선배들을 보고 나도 패션 관련 동아리 두 곳에서 활동하고 있다”며 “밤 늦게까지 학원에서 시간을 보내기보다 교내에서 친구들과 함께 관심분야 활동을 할 수 있게 돼 좋다”고 말했다.
박주희 기자 jxp938@hankookilbo.com